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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딴따라역사

조선 제3대 왕 이방원

by 찌붕이 2017. 6. 4.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적 부터 무예나 격구보다는 학문을 더 중시 했다.(이성계의 아들들은 대개 무인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이렇게 학문을 중시 하던 이방원은 과거급제 합격하였고 명나라에 파견되는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이색을 따라 북경에도 다녀왔었다. 


이후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이 발단이 된 위화도 회군을 이르키자 방원은 고려 왕조 유지 세력을 제거 하였는데 제거 당시 온건개혁파들을 숙청 하였다. 이후 온건개혁파인 정몽주를 설득하다 회유가 불가능 하여 선죽교 앞에서 정몽주를 타살하였고 이색과 그의 두아들 및 이숭인,길재 등을 축축하여 반대파를 제거하였다.(정몽주가 죽은 후 이자리에서 대나무가 솟았다고 하여 선죽교라 부르게되었다고한다.)


이렇게 정몽주를 제거함으로써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진 세력의 기반을 굳건하게 하여 새로운 왕조인 조선을 세우는데 왕세자를 결정하는데 좀 문제가 있었다. 개국의 공로로 따지면 이방원이 태조의 아들 중 가장 많은 공을 세웠으나, 당시 정도전은 신권을 주창하던 터라 왕세자로 태조의 막내아들인 의안대군을 왕세자로 선택한다.(의안대군은 방원의 이복동생이다.)

이에 방원과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 왕자들은은 왕의 계승에 대한 불만을 품었다. 급기야 사병 혁파를 정도전이 기도하는 등 이방원과 마찰을 빚자, 이방원은 태조가 와병 중임을 틈타 이숙번, 하륜, 조영무 등 과 함께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 개국공신들과 이복동생 무안대군 방번 세자 방석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한다.

이일 이후 태조는 권력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영안군 방과에게 보위를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난다. 왕위를 물려받은 태조의 둘째아들 방과는 조선의 제2대 국왕 정종이다. 하지만 형제들 간에 다시 한번 분란이 발생하는데, 이방원의 넷째 형인 회안대군 방간이 박포의 꼬드김에 넘어가 왕위에 오를 목적으로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이때 이화 이천우 등 그를 도왔고, 상대적으로 우수한 장수들과 병사들을 가지고 있던 이방원은 쉽게 이 난을 진압하고 왕위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다. 이후 박포 등을 처형하고 회안대군 부자를 황해도 토산으로 귀양보냈다. 이후 정종에게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책볻된 지 9개월 만에 정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태종에 업적에는 여러가지들이 있는데 그중 숭유 억불 정책이다.

태종 자신이 성리학을 수학한 인물이었지만, 새 왕조 체제에는 이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불교에 대한 억압정책을 한층 더 강화 했다. 사원혁파를 단행하고 사찰에 소속된 노비와 전답을 압수하였으며, 승려들 역시 천인 취급하였다. 이로써 얻어진 전토를 국고에 강제 환속시켰다. 

과제 개정과 신문고를 설치 하여  6조 직계제를 통해 의정부와 6조의 관료들이 왕에게 직속되어 정무를 다스리도록 하였고 관료들을 잘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고려 말기에 10년간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로 지냈던 적이 있기에 관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알고 있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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