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부/딴따라역사

역사속으로 충무공 이순신

by 찌붕이 2017. 4. 28.

오늘(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의 탄생일이다. 조선 중기의 무관 이고 조선 수군을 통솔한 지휘관이다. 시호는 충무공이며 충무라는 시호는 나라의 수호에 큰 공훈 을 세우는 최고의 칭호이다. 현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장하면 떠오라는 사람은 ?" 하면 이순신 이라고 답 할 정도로 이순신 장군은 한국인에게 존경 받는 위인이다. 


이런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많은 해전 가운데 큰 대승을 건진  중에 3대 대첩 (한산도 대첩, 명략대첩, 노량대첩)을 알아 보자 .


한산도 대첩

한산도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대첩으로 후대 사람들이 칭찬하는 해전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592년 조선을 침략하여 조석 육군은 패배에 패배를 하고 결국 선조는 의주 까지 도망을 가야 할 상황이었다. 이순신의 함대는 일본의 윤군 수송부대와 수군을 상대로 일방적인 토벌전에서 승리하고 이후 일본의 해안 수군부대가 조선의 수군에 의해 동쪽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염려한 도요토미 히데 요시는 다시 해안으로 급하고, 오다 노부나가 시절부터 수군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구키 요시타카 와 그 외 가토 요시아키 등 3인을 소집하여 잔존 수군과 조합하여 조선 수군을 토벌하도록 하는데 이순신은 유인책과 학익진으로 일제히 일본수군을 유인하여 일본수군을 부셔버리기 시작한다. 이에 200~400정도 배를 유기찬채 섬으로 도망갔다.(도요토미의 조선침략에 의지를 꺽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명량대첩

"지금 신에게 아직 열두 척 전선이 있사옵니다."라는 말과 함께 불타는 의지를 보였던 이순신 장군.   칠천량 해전 이후 조선 수군은 거의 궤멸되었고 남아 있는 건 뿐인 판옥선 12척이지만 12척 vs 330척 말도 안되는 쪽수를 승리로 이끌어낸 대단한 승리이다.(330척 or 130척 이라는 말이 많다.) 이후 왜군의 서해진출을 차단한 큰 흐름을 바꾸는 전투였다.


노량대첩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철수 퇴각 하려다 과음포에서 매복하여 조선수군이 왜군에게 기습을 가하며 시작 된 노량해전은 왜군의 적선은 400척을 격파하였다. 남은 왜선은 남해 방면으로 도망쳤는데 이순신장군은 추격했지만 유탄에 맞아 쓰러지는데 이때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라는 말을 하고 유언을 남기고 조선 수군은 장군의 죽음을 모른채 정오까지 적을 소탕하엿다.


이렇듯 많은 해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수군의 학익진, 일자진, 점자찰진, 장사진 등 전술이 있었다.


학익진

정자타법을 개량한 것으로 개량한 학이 날개를 펴듯 적을 둘러싸서 공격하는 진형


일자진 

횡렬로 늘어선 서서 진격하는 진형


첨자찰진

많은 배들이 이동하거나 적군을 공격하기 유용한 진형


장사진

뱀처럼 늘어세워 길게 벌이는 전법


이 전술들을 이용해 이순신 장군은 많은 해전에서 이길 수 있었다. 


그 때 당시도 그렇고 현재에도 이순신 장군은 영웅이다. 역경속에 영웅이 있다면 그 역경을 해쳐나갈 때 많은 힘이 될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역경에 역사적인 영웅이 나오길 바란다.


댓글